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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anuary 3, 2009

Nobody Knows (daremoshiranai)

어느날 담임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부르셨다.
"너 오늘 수업끝나고 C군네 좀 가 볼수 있겠니?"

C군은 반에서 조금은 특이한 친구였다. 또래중 가장 작은 편에 속한 그는 착하지만 언제나 부산하고 큰문제는 안일으키지만 말썽장이중 하나였다. 그는 또 자주 준비물이나 숙제, 또는 시험준비가 부족한채 등교를 해서 매 수업마다 혼이 나는 친구였는데 밝고 말을 잘하면서도 특별한 이유없이 반친구들고 잘 어울리지 못하던 친구였다. 성적보다도 진도를 못 따라가는 친구였는데 그떄문에 담임 선생님께서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였다.

집에 전화나 방문을 하시는게 낳지 않을까 생각 하는 순간 선생님께선, C군은 부모님 없이 여동생과 할머니 그렇게 단 셋이 산다며, 다른 반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다녀오라며 당부하셨다. 선생님께서 직접 방문하고 싶지만 손주들을 홀로 키우시는 할머니께 선생님이 방문을 하시면 부담이 되실까 내게 조용히 준비물, 숙제정도만 창겨 달라고 슬쩍 당부해드리고 오라고 하셨다, 마치 내가 걱정이 되서 전해드리듯이.

C군은 이미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해놓으신듯 수업이 끝나자 날 기다렸다. 친구를 집으로 데려가는것이 드문듯 떠들어 대던 C군은 살고 있는 집이 아닌 시장으로 날 안내했다. 그제서야 알아 챗지만 C군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시장을 들려 어린 여동생을 데리러 가는 것이 일과 였다. 재래식 시장에서 붉은 다라에 야채를 얹어놓고 행상을 하시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시킬겸 나를 안내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간 여동생은 학교가 끝나면 오빠가 데리러 올때까지 할머니곁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고 했다.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C군이 학교에선 어떠냐는 질문에 짧게 C군이 숙제나 준비물을 자주 빠뜨리고 오지만 착하고 좋은 친구라 말씀드렸던것 같다.

C군과 그의 여동생과 세식구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난 몇년째 같은 반에 배정되었던 이 친구가 나보다 2살이 어리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동기들보다 키가 작고 철이없이 부산하고 말썽을 피우던 그는 그저 학년에 비해 나이가 어렸을 뿐이 란걸 깨닳았다. 그가 수업을 힘들어 하고 성적이 뒤쳐지는 이유도 감이 잡힐듯 했다. 반친구 이상으로는 잘알지 못했던 탓에 그동안 학교밖의 그에 대해서 잘 모른채 그저 부산한 친구라고 생각했던내가 웬지 조금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 부터 수업이 끝나면 5시반 어린이 방송을 할때까지 밖에서 뛰어 놀곤, 할머니께서 귀가하실 때 까지 TV를 본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서야 숙제를 조금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 할머니에 마추어 잔다고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과는 달리 단순히 학교가 그에 삶에는 전부가 아닌 것에 의아하며 부럽기도 했다.

슬쩍 부모님의 이야기가 궁금해 꺼내보았다. 혹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우려도 했지만 오히려 그는 아무런 꺼리낌없이 아버지가 집을 나가신고 홀로 그와 그의 여동생을 키우시던 어머니마저 생활고를 못이겨 할머니에게 둘을 맏기고는 나가신채 안돌아 오신다는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인양 내게 말했다.

철이 없이 보였던 C군이 웬지 다르게 보였던 계기였다.

"내가 그의 입장이였으면 어땠을까?" 한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버스안에선 착찹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다. 늦게 돌아온 내가 어두워 보였는지 저녁상을 차려주시며 어머님께선 캐물으셨다. 내 대답에 학원에 늦었다는 꾸중도 안하시고 오히려 숙제를 일찍끝내고 자라고 하셨다. 난데없이 아버지께 잘하라는 말씀과 함께 C군에게 앞으로 잘해주라는 말씀만 하셨다.

어머님은 일을 하시는 할머니가 아마도 손주를 보시기가 힘에 부치시니 C군을 일찍 학교에 넣으신것 같다며 이런 일이 종종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한국에는 자식들을 두고 나가선 돌아오지 않는 부,모들이 꽤 많다고 하셨다.


일본도 크게 다르진 모양이다. 1988년에 실재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2004년도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 (영제 Nobody Knows, 일: daremoshiranai)는 어머니가 떠난후 동경의 한아파트에서 살아가는 4남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picture source: wikipedia

12세란 어린 나이이지만 듬직한 후쿠시마 아키라. 어쩌면 그가 믿음직 스러웠기에 어머니인 게이코가 그렇게 쉽게 떠나갈수 있었지 않았을까 쉽기도 하다. 아키라역을 맏은 야기라 유야, 둘째 교코역의 키타우라 아유, 그리고 학교라는 단체에서 4남매와 크게 다르지않게 외소당한 사키역을 맏은 하나에 칸까지 모두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고 느꼈다. 특히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 주연상을 받았다는 야기라 유야의 연기는 마치 다큐멘타리를 보는 기분이 들정도로 멋지게 아키라 역을 소화해냈다. 철없는 시게루와 유코를 사랑하는 아키라와 쿄코... 어머니가 돌아 오지않을것을 알고도 분노도 슬픔도 삼킨채 동생들과의 삶을 이어가는 아키라 두개의 다른 필채를 조용히 홀로 바라보며 안으로 삭이는 쿄코의 모습은 울음을 짜내기 보다는 마음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Fukushima Akira played by Yuya Yagira

어머님께선 C군의 부모님을 미워하는 내게 자식을 버리고 떠나간 부모는 하루 한시도 마음편히 못산다고 하셨다.
아키라, 교코, 시게루, 그리고 유코를 버리고 간 후쿠시마 게이코는 영화 안에서 마음편히 있었을까.

한국에 돌아 가게되면 멋진 C군을 보고싶다.

Sunday, September 28, 2008

그들은 꿈도 영어로 꾸겠지

예전에 읽었던 어느 이의 글에는 미국인들은 '꿈도 영어로 꾸겠지'라고 써있었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영어교육 열풍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식을줄을 모른다. 한국어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미국을 꼬집으면서도 영어만큼은 한국인의 크립토나이트가 아닌가쉽다.

들풀님의 얼음집 포스팅 미국 사람은 영어를 잘 할까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 역시 자주 궁금해하던 내용이 알닐수 없다.
들풀님과는 조금다른게
'미국사람은 영어를 잘 할까' 보다는 '...잘 알까' 가 궁금했지만...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닌 주립대 역시 전교생 모두 exit exam이라고해서 간단한 영어 수학 문제를 졸업전에 쳐야 했는데, 뭘 준비해 가야 할 줄도 몰랐다가 시험문제를 보곤 '지금 장난하나'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인종을 떠나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때 와서 초중고를 다닌 친구들의 시험 후의 말, 특히 영어 문법 섹션에서 힘들었다는 고백을 듣고 흠칫한 기억도 난다.

영어를 아는 것과 하는 것에는 조금은 큰차이가 있지않나 싶은 생각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미국인들 대부분이 글을 쓸때 문법보다는 말하는 대로 쓰는 듯 하다. 대학시절 글을 잘쓰기로 소문난 친구들조차 명사 동사를 제외하고는 형용사 부사 전치사등등이 뭔지도 상관을 안한다는 사실에 놀란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말하는 데로 글을 쓰지 문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별스럽지 않게 밝혔고. 게다가 단어 역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뒤지거나 뜻을 알고 읽으려기보다는 앞뒤 문맥을 보고 단어의 뜻을 넘겨짚는다는 고백에 더더욱 놀란적이 있다. 그들이나 나역시 단어의 양에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문법이나 특수단어에는 내가 더낳았다고 해도 틀리진 않을것이다. 그럼에도 나와는 달리 그친구들 모두 영어를 하며 사는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고 (당연히) 심지어는 영어/작문 수업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던 것이 기억이난다. 영어를 아는것에는 한국의 유학생들이나 이민학생들이 뛰어났지만 하는데에는 차이가 있었던것같다.

미국에서의 영어교육은 문법이나 회화(국어니 당연히)보다는 읽고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나타내는것을 더욱 중요시 하는것 같다는 것이 내생각인데, 중학시절 이후엔 학교에서 문법에대해 수업을 받은 기억이 없기때문이다. 모든것이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데에 포커즈가 맞추어졌지 왜 여기선 이 전치사를 저 부사를 써양하는지는 누구도 강조한 기억이 없다. 한국과는 크게 다르지않은가.

누군가 문법 백날 해봐야 회화 한마디 제대로 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는데 크게 틀린말은 아닌듯 쉽다.

들풀님은 '언어를 바르게 쓰는 것은 많은 독서나 글짓기와 같은 훈련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체계적인 교육의 산물이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쓰셨는데 크게 공감했다. 조금 덧붙이자면 회화 역시 훈련의 결과가 아닐까. 정말이지 '바르게' 쓰는 언어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겐 한국에서 수업시간에 배운 영어는 솔직히 미국와선 크게 도움이 되질 못했다. 짝사랑에 연애편지는 30,000통도 써봤지만 여자앞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숫기없는 소년의 무용마냥 한국의 영어 교육은 결국 양키같이 영어 말하기같은 영어 교육보다는 '영어 회화'잘하기에대한 일그러진 동경의 노력은 아닌가 생각 해본다.

가끔은 아내에게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한국어를 할 수있을까 라고 묻곤 하는데 들풀님의 글을읽곤 잠시 이미 조금씩 일어버리고 있는 한국어 난 얼마나 잘할수 있을까 라는 기분도 든다.

California Republic

California gives its lawmakers unlimited gas cards
source: autoblog

I C...so, that's where my tax money goes into...
perhaps, I should have gone into politics...

I guess it is okay with government uses tax dollar to run their vehicles,
but, question one, how'd they know if gas card is used only for state-issued vehicles, hmmm suspicious
question two, how they regulate spending if it is unlimited, is there any restriction?
question three, how such a CA exclusive absurd law passed?
question four... man, I should stop grumbling here...

All of us...will we ever learn?

Thursday, August 28, 2008

LPGA English Mandate



ABSURD!!! A true definition of absurdity, indeed.

and I thought golf is an individual sport; if it was a team sport, still, may be. IMO let the best man, in this case, the woman play the sport.

Wouldn't US constitution support that an equal opportunity should be given regardless of age, gender, race, and religion and shall never taken away for those reasons? Then, it would do so about the language!

Since when players are REQUIRED to communicate with fans via verbal language only? They still communicate and inspire fans, viewers, and other competitors through their skill, ability, and mental mindset.

Did MJ make that amazing buzzer beater at the championship saying fans here comes the shot? Every time Brat Favre take the hit and still complete the bullet train to WRs what does he need to explain to us? And isn't Kobe still the most popular one in China among all athletes, basketball or not, and Chinese or non-Chinese speaking all combine? And I bet most foreign LPGA tour golfers speak better English than Kobe ever speak Chinese!

Some says the golf is a gentleman's sport. For sure it is not an elegant-lady's sport. It again proves to be another business and political pigs muddy play ground.

Monday, August 11, 2008

10년 살아도 못배우는 영어라니

한국은 이미 실행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보통신이 생각보다 아시아나 유럽에 한참 뒤쳐진 이곳 북미는 디지탈 TV의 변화가 최근에나 일고 있다. 그이유는 다름아닌 내년인 2009년 2월에 현재까지의 아나로그 방식의 방송신호가 끊기기 때문인데 그렇게되면 기존의 TV로 시청을 하기는 불가능해진다.

TV를 바꾸지않고 시청을 계속 하기위해선 디지탈 신호를 아나로그 신호로 바꾸어주는 신호 변화기가 필요한데, 현재 정부에서는 한집에 최고 2대의 신호 변화기를 살수있는 쿠폰을 나누어 주고 있다. 각 쿠폰은 $40어치로 전자매장에서 신호 변화기를 사면 해당 기기에 따라 $40까지 할인을 받을수 있다.

한참 즐겨보던 케이블을 보내고, 아내님과 디지탈 TV를 보기 시작한 우리는 36개가 넘는 채널과 2개의 한국방송 (MBC, KBS)를 즐기고 있다. 깨끗한 HD quality 고화질, 음향은 물론 뉴스와 일기예보 채널역시 마음에 든다.

부모님 역시 좋아하실거란 생각에 쿠폰을 대신 신청해 드렸는데 아무래도 설정에 조금 애를 먹고 계신듯 하다. Insignia가 Best Buy에 납품을 하는 한국 회사라고 들었는데 한국어 설명서도 곁들여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다.

주말동안 시간이 남에 설명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부모님께 보내 들였지만, 내가 직접 갈수 있어서 설치, 설정을 해드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가해본다.

아직 한인 타운에 사시는 부모님은 미국에 온지 20년이 다되가시지만, 아직도 간단한 영어 이외에는 하시지 못하신다. 오히려 일하시는 곳과 사는 동네의 덕인지 서반어어만은 남미 한가운데 떨어 뜨려 놓으셔도 별탈없으실 정도로 수월히 구사하신다. 아마도 한국에 가실일이 생기시면 친구, 친척분들은 이민을 남미로 가셨다고 착각하시기 딱이겠다.

중학교때 처음 만난 L군과 K군은 무려 유치원, 국민학교 시절에 미국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섞인 영어를 해 같은 한국인은 물론 코쟁이들도 알아들을수 없을 희한한 영어를 구사해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구라치지말고 솔직히 말에 너희들 온지 얼마 안됐지?"라는 농담을 자주 듣곤 했다.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또다른 K군은 무려 4살때 왔음에도 현재 영어를 완벽히 못하는데 한인 타운에 사는 그는 한국어외에는 영어를 거의 쓰지않고 자라와서 아직도 영어가 불편한 케이스다. 놀랍게도 자라오며 이런 친구들을 많이도 만나왔다.

어떻게 이런것이 가능할까? 처음 이민을 왔을때 주위분들이 부모님께 아이들 영어 빨리 가르치려거든 한인타운에서 벗어 나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 믿는다. 학교 수업말고는 한국친구들과 어울려 한국말, 한국책, 한국음악, 한국방송등을 시청하고 자라선 영어가 늘지 않는다. 한국에서 고교때까지 6년간 영어를 배웠음에도 영어회화가 어색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영어와 한국어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일거고, 또 자주 쓰지 않기 때문이겠다.

예전에 미국에 살아도 한인타운, 특히 서부지역에서도 Los Angeles의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10년 20년 살아봐야 영어를 배울수 없다고 한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한국인들은 미국에 백인 흑인들만 사는줄 아는 듯한 말을 곧잘 인터넷에서 접할수 있는데, 사실 LA의 한인 타운 같은 경우 일상의 99%는 한국어 만으로도 아무 불편함없이 살아갈수 있는 곳이 이 미국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불편한 삶이기도 하다만, 한인 타운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둘려쌓여 자랐다면, 지금 이렇게 한글로 블로그를 할수있고, 최민호, 박태환의 금메달에, 한국 양궁에 자부심을, 그리고 아쉽지만 훌륭히 싸운 왕기춘, 남현희 선수에게 긍지를 느낄수 있을까 쉽다.

Insignia NS-DXA1 Korean Manual

if copy right becomes problem, above images will be deleted as requested

Tuesday, July 29, 2008

The Last Lecture

Eeyore & tigre...

"Be willing to apologize. Proper apologies have 3 parts:
1. what I did was wrong
2. I'm sorry that I hurt you
3. how do I make it better?
It's the third part that people tend to forget. Apologize when you screw up and focus on other people, not on yourself."

Randy F. Pausch 1960 10 23 - 2008 07 25

Wednesday, July 23, 2008

IN-N-OUT

레이너님의 posting reminded me of some good ol' days

Man I used to go to In-N-Outs a lot in college. In-N-Out is known for its quality, cheap price and some goodies... such as Double Double and Animal Style. Here are 2 episodes at an In-N-Out in SD that I will never forget

1. VEGEBURGER: A young lady in front of me ordered a double double animal style with no meat patties and no cheeses but extra lettuces. That's right, a DD AS without patties and cheeses... "what do you want lady?" It took a while for her order gets through properly.

2. MISCHIEVOUS: My roommates and I were very hungry, yet we were still full of mischievous thoughts. "welcome to In-N-Out; what can I get for you?" We spoke loudly at the intercom of the drive through. "we would like to have three 10x10!" We thought we caught the lady off guard. But, instead she calmly said "would you like to have onions with them?" Oh, man, no she caught us off guard. We were petrified. uhh....eh.... we looked at each other... finally we agreed to settle down with 4x4s. Again, the lady calmly re-checked our order "are you sure?" Man, she is pro. We were thankful that it was at the guy at the cashier's window. As far as I know, none of us havn't tried 10x10s yet.

Cocoa's new trick: Side Lying on CMD

Mu ha ha ha ha! Cocoa's a brand new awesome trick:
Cocoa Side!


코코의 옆으로 누워 신공!
성우: 마눌

Cocoa in dream

7월은 초큼 잔인한달 허스키에게...
I guess summer's a bit tough on a husky. Cocoa's been taking naps all afternoon.
She goes out to her favorite spot on the patio to take her afternoon sun bathing + nap whenever it's nice and cool. Wonder if she's dreaming of Alaska

여름이 되니 그늘이나 마루에서 오후내내 잠을 자는 코코.
이러고도 밤에 또 잘수 있는 네가 부러워...

마루에서 정신없이...
냉큼 네 카펫위로 돌아가지 못할까!

집안 유일의 코코영토... 카펫
크하하, 꿈꾸는 코코... 말 달리쟈~아
북극곰자세의 코코
조금날씨가 풀리자 뒷뜰로 옮긴 코코
정오에는 반듯이 일광욕을 한다

날이 추워지면 펄펄 나는 코코지만 조금 더워진다 싶으면 바로 하면 모드. 꿈에서는 눈위를 달리고 있을지도...

Red in Chinese

중국인들은 붉은 색을 상당히 좋아한다. 국기는 물론이고 부적마냥 집안 어딘가에 붉은 색을 두기를 좋아하고 정문, 현관, 또는 대문을 붉은 색을 선택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비록 한족의 옷이 아니지만 전통의상처럼 입는 치파오 역시 붉은색에 황금색을 넣은 것을 최고로 치기하는데. 중요한 행사나 가족의 모임등의 식탁에는 꼭 빠지지 않고 어딘가에 붉은 색을 넣어야 한다는 전통에 가끔 결혼식에서 구세대 부모들과 신세대 자식들간의 실랑이도 흔한 이야기이다. 결혼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한국의 결혼식에선 흰 봉투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인들은 반드시 붉은 색이다.

왜 붉은 색을 그다지도 좋아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쁜기운을 쫒아 준다던가, 높은 자리를 나타낸다 라는 여러 이유로 인해 중국인들에게는 No.1 color는 단연 붉은 색이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의 붉은 색은 중국인들에게는 '홍紅'인것 같다. 나는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紅자 보다는 적赤자가 먼저 떠오는데 중국인들은 아닌듯하다. 내가 알기로는 日語에서도 붉은색하면 赤을 꽤 많이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려면 잠시 삼국지이야기를 꺼내야 하겠는데... 내 생각엔 중국인들 보다도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삼국지에 더욱 열심인것 같다. 주위엔 어찌된것인지 나보다 삼국지를 잘 아는 중국 친구들이 없다. 그들의 부모님들도 역시 다르지 않은데 삼국지 이야기를 꺼낼만한 친구의 부모님은 딱 두분 만나본게 전부.

삼국지 하면 역시 요즘 한국에선 개봉된 (북미에서는 나왔는지...) 적벽대전 赤壁大戰이 떠오르지 않겠나? 여기서 쓰는 단어는 붉을 적赤자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일상대화에서는 붉은색은 전부 紅인것 같은 눈치.

붉은색 하면 홍, 적, 주朱의 세 글자가 떠오르는 나지만, 중국인들은 모두 식구들과 친구들을 비롯해 한명도 紅이외에는 쓰는 이가 없다. 미스테리가 아닐수 없구나.

붉다 의 뜻을 가진 한자들중 몇
붉을 홍 紅
붉을 적 赤
붉을 주 朱
붉을 단 丹
붉을 자

진홍 강 絳
불빛 혁 爀
빛날 혁 赫
붉을 혁 奕
붉을 동




Friday, May 23, 2008

햄스터 한마리 주면 안잡아 먹지~

레이너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애완동물의 포스팅을 보았다. 애완동물 하면 떠오르는 일들이 몇개 있기에 남겨 본다.


오늘로 1살이된 코코

1. 처음으로 키운 애완동물은 진도/발바리 잡종이었던 캐리였다. 누런색에 쫑긋한 귀를 가졌던 캐리를 가지러 갔던것은 외삼촌의 전화를 받은 여름방학의 한 금요일이었다. 당시 과수원을 가지고 계셨던 막내 외삼촌은 개를 여럿 키우고 계셨는데 그중 진돗개 숫놈과 진도/발바리 잡종이었던 암컷사이에서 캐리가 나왔다. 아무래도 강아지들이 곧 나올 것 같은 모냥이셨던지 외삼촌의 우리집에 전화를 거셔서 한마리 정도 데리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귀뜀을 주셨고 강아지라면 미칠듯이 좋아하는 우리 삼남매는 떼를 써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기로 했었다.

몇년전 안채에 세를 들어온 젊은 부부가 데리고 온 강아지 캐리를 너무 좋아했던 우리는 새 강아지의 이름도 캐리라고 지어 주리라 마음을 먹고 수원으로 내려 갔다. 도착했을 떄 그곳에는 암캐한마리가 조용히 거실 한쪽에 놓인 이불위에 누워있었고 여러마리의 강아지들이 젖을 빨거나 곁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거의가 누렇거나 검은 팻치가 있었는데, 우린 그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녀석을 골라 내었다. 아직 눈도 못뜨는 강아지였지만 어머니의 장바구니에 부드러운 천을 깔고 그안에 넣어 전철을 타고 온 기억이 난다.

젖병을 빨지 못해 손가락으로 우유를 먹이던 것도 생각이나고, 남은 밥을 정성스레 비벼주던 생각. 녀석이 배설물을 숨기는데 귀신이라 설마 흙으로 덮으리라 생각 못하고 찾으러 여려날 뒷뜰을 뒤진생각. 변기에 빠져 끙끙대는걸 새벽녂에 발견해 일일이 손으로 아버지께서 닦아 목욕시킨 생각. 도둑이 들었을때도 짖지 않아다며 여름내내 어머니께 꾸중들던 캐리 생각이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캐리가 관련된 어떤 이유로 아우녀석을 옥상에서 계단 아래로 밀어 내어버리는 불상사를 낸후 아버지께 정말 죽는게 낳다 싶을 정도로 맞은 기억도...

그때문인지 아님 다른 이유였는지, 어머님은 코너 제물포/고물장사를 하시던 아주머니/아저씨 부부에게 통닭한마리와 파인애플 한 캔을 받으시고는 캐리를 내주셨고, 누이와 아우와 함께 하루종일 울었던 토요일 오후도 기억이 난다.
학교가 끝나면 캐리를 보기위해 일부러 한참을 더 걸어야 하는 35번 버스를 타고 집에 오던 기억도 나고 결국 도둑을 맞았다는 사실에 개도둑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다시는 캐리를 볼수 없다는 슬픔에 또한번 탄식했던 생각도 난다.

이미 이십년이 다되가는 이야기이지만, 가끔은 코코를 보며 캐리도 생각을 한다는 것을 녀석이 알지 모르겠다.

2.
않아 쉬고있는 잠자리는 날개를 편채 있다. 날개를 접은놈은 실잠자리나 도시 외지에나 나가야 볼수있는 이름도 기억이 나지않는 검은색 또는 짙은 보라색의 일부 잠자리만 있을뿐이다. 그러무로 날개를 편채 있는 잠자리는 뒤에서 살금살금 접근해서 잡을 수 있다. 잠자리란 녀석은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360도를 다 볼수 있기에 조심히 접근하다. 가위 모냥으로 손가락을 벌려 날개 아래로 접근해 두 날개를 접어 잡아 올린후 꼬리에 실을 감아 잡는다. 일단 잡힌 녀석은 날개가 온전한지, 꼬리나 다리가 성한지 살펴본후 색도 모냥도 훌륭하다 싶으면 나무상자를 가방에서 꺼내어 조심히 유리판을 조금 밀어 올린후 잠자리를 넣는다.

애완동물은 아니지만 한떄 잠자리가 멋있는 곤충이라고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같은 반이었던 한 녀석에게 맨손으로 잠자리를 잡는 법을 배운 나는 가을이면 녀석들을 잡아 마치 파브르가 된 착각에 돋보기로 들여다 보거나 채집을 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한번은 한 반에 있던 어떤 녀석이 다른 색깔 다른 종류의 잠자리를 채집해 온후 학교에서 만든 나무박스에 스티로폼을 넣어서 채집상자를 만들어와 자랑을 했다 (내 기억으로는 국민하교 2학년에서 4학년 사이에 여학생은 바느질을 남학생은 나무상자 만들기 등을 한것으로 기억한다). 배알이 꼴린 나는 더 많고 수와 종류의 잠자리를 채집해 녀석을 눌러줄 생각에 꽤 커다란 나무 상자 제작에 들어갔고 용돈을 모아 마춤유리판을 사고 아버지를 졸라 유리판을 상자에 끼워 넣음에 성공한다. 이제 잠자리들을 잡아 색깔과 무늬, 모양을 골라내어 스티로폼에 핀으로 눌려놓고 만든 상자않에 넣어놓으면 되는것인가!

그렇게 사, 나흘을 잠자리를 잡아 모은 나는 상자 가득한 잠자리를 집으로 가져와 구분을 하려던 참이 었다. 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상자를 꺼내놓고는 의기 양양해 있던 나였지만 나와서 저녁밥을 먹으라는 어머님의 부름에 야동보다 덜컥 걸린 고딩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매일 오후 방을 치우시는 어머니께 들키지 않으려 책장上위에 그 상자를 올려놓고는 저녁을 먹으러 방을 나왔다. 문제는 그리고는 그 사실을 까마듷하게 잊고 있었다는 것. 무슨 이유인지 그날이후 난 잠자리 obsession이 사라진채 가을을 내내 보내었고 겨울방학이 끝나갈쯤 어머니의 호통으로 방을 치우며 이 사실을 깨닳았다.

먼지가 쌓인 유리판을 걸래로 닦아냈을때 그아래엔 당시엔 깨닳지 못했지만 상자에 가득차게 난 잠자리들을 모아 넣어 놓았고 마치 공포영화나 괴수영화의 한장면에 징그러운 생명채가 가득한 공간 앞에서 떨고 있는 주인공 마냥 그 기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바짝 마른채 상자안에있는 잠자리들은 배가 고프자 서로를 뜯기 시작한 모양이었고 성한 녀석은 거의 없었다. 죽었지만 살아 있을때와 변함없는 녀석들은 왠지 더 괴기 스러웠고 어디선가 알지 못할 괴물의 아우성과 괴음들 그리고 비릿한 냄새와 함께 다들 살아 날것도 같은 분위기였지만 결국 누이의 소스라침에 어머니께 발각되면 죽는다는 현실을 깨닳고는 정성을 드려 만든 상자와 함께 놈들을 버리고 말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 이후로는 더이상 죽은 쥐도 가지고 놀지 못했고, 땅강아지나 하늘소가 곤충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바퀴벌레는 지금까지 몸서리를 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이상한것은 아직도 잠자리는 fascinating하게 생각된다는 것.

3. 첫 대학의 여름방학을 맞아 난 집에 잠시 돌아 왔다. 집에 돌아온 나를 새로이 맞이해 준 것은 아우가 펫샵에서 사온 작고 귀여운 드워프 햄스터였다. 주머을 쥐어 감출수 있을 정도로 작은 데다가 다람쥐를 보는듯이 귀여운 녀석이었지만 물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애완동물로 여기기엔 조금도 사람을 따르지 않는 aggressive한 동물이 었다. 먹이를 주면 바로 먹질않고 볼안 가득히 집어넣어 물고 있는 데다가 배주위에 불룩히 살이 나와 있어 주머니란 의미로 '파우치'라고 이름을 지워 주었다.

수컷이라고 펫샵에서 골라주었다기에 새끼를 배었다고는 생각치 못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숫컷은 무슨 개뿔! 웬걸, 며칠후 2마리의 하얀 알바이노를 비롯해 전부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털도 안나고 눈도 못뜨던 새끼들은 하루가 지나자 움직이기 시작했고 며칠이 지나기전에 마구 돌아 다니기도 해서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가 잡기도 하는 등 온갖 말썽끝에 용돈을 털어 사과 상자 만한 철장 우리도 사 주었다.

무슨 이유인지 알바이노들은 몇주가 지나지 않아 이지매로 죽임을 당했고 우리는 곧 새끼들이 어미많큼 커졌음을 깨닳았지만 사태는 늦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여러마리가 약해서 죽거나 이지매를 당해서 우리를 벗어났지만 6개월이 안되서 50마리 가까이 늘어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눠 주었음에도 40여 마리가 우리에 남아 있자 아우와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감당을 못한채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펫샵에 넘기려 했는데 주말에 집에와보니 아우녀석이 벌써 야산에 방생하는 것으로 처리를 했다. 함부로 그러면 안 되는데 라며 걱정도 되고 야생으로 돌려 보내려 했구나 라는 생각에 기특해서 한마디 해주려 했는데 아우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쓰다듬어 주려 하면 무는 데다가 용돈을 먹이와 철장으로 날린 아우녀석은 녀석들이 짜증이 나서 이리한테나 물려가라는 생각에 코요테 출몰지역까지 운전을 해 가서 놓아주고 왔다며 별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당시 고교생이었던 아우가 사알작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추가: 레이너님이 알레르기로 인해 털 달린 동물들과 안친하다니... 안가인은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Saturday, May 10, 2008

memento

십대 이전부터 50이 훌쩍넘을 때까지의 매일 매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한 여인이 있다.
놀라울만한 기억력에 모두들 놀라고 또 어떤이는 부러워 하기도 하지만
역시 그녀가 말하는것처럼 모두를 기억 하는것은 축복받은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좋은 추억을 그때 그대로 기억할수 있는 것처럼 나쁜 일 역시 잊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어떤 추억은 지우려 해도 지울수가 없고 (연애인들의 몸무게라든가)...,
정작 다른 꼭 필요한것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외울수가 없다... 해부학 1차 시험공부의 내용이나 아내님의 생일, 아니면 Uma Thurman의 전화번호 같은 것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았다는 사실도 잊곤한다).

기억할수 있는것을 계속 떠올릴수 있고 잊고 앞으로 나아갈수 있는 일을 기억 저편으로 지울수 있다는것은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Wednesday, March 19, 2008

진로에 대하여

"뭘 결정 하든 it's up to you. 하지만 네가 후회하는 것을 보고 싶지않아.
10년후 네가 내게 울면서 후회한다고 하면 도저히 봐줄수 없을거야.
누구나 보이지 않고 알수없는 미래는 두려운거야.
그러나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지금 여기에서 단 한발자국도 움직일수 없어!"


마치 영화의 한 대사같은 어줍잖은 이말은 L군이 학교를 끝마칠쯤 내게 해준 잔소리중에 하나이다. 당시 MCAT을 공부하며 학교에 원서를 넣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체망하고 있을 때였다.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채 헤메고 있을때 무참히 내게 싸대기를 날려준 친구는 자신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털어 놓았다.

내 좁은 견해로는 여자에 비해서 남자들은 진로 결정에 대해서 민감한 것 같다. 단순히 직업이 아니고 평생일을 하며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쉽게 대충 결정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말하면 남자라면 누구나 젊은시절 단순히 돈을 버는 job/work이 아니라 평생을 걸어야 할 길/career에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 딸이 있다면 진로 고민에 친구들과 술한잔 털어 보지않고 하고싶은 일에 열정을 불태우지 않는 녀석따위에게는 절대 주지 않을 것이다.

우연하게 알게된 한 블로그에는 아직 열혈의 나이로 보이는 주인장이 자동차이야기와 함께 weight training으로 자기 발전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포스팅했다.

예비군을 하고 있다는 그는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이 학교와 컴퓨터 그리고 WOW로 시간을 보낼 요즘같은 때에 몸을 만들고 앞날의 진로에 대해 살작 고민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장교가 되고 싶다는 그가 지금은 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느 길로 가고 싶고 왜 장교의 길을 가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히 학교를 나와 '뭐'든 되려는 마음이 아니라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하는 옳바른 사람이라는 모습이 비추어 지는것 같다.

무엇을 결정하던 그가 좋은 조건보다는 자신에게 옳은 결정을 하길 바라고 지금 하고 있는 일/공부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그가 보여주겠다는 transformation을 기대하며 자신이 다짐한일을 하나 하나 해내가는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


"Winners Simply Do What Losers W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