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5, 2008

zzyzx

몇년전 시립병원에 있었을때에 일이다.

4층 internal medicine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L군은 5살때 이민을 와서 LA외각지역에서 자랐으면서도 박찬호보다 정확히 256배 발음이 뛰어난 그런 유창한 생활 한국어를 구사하는 희한한 녀석이었는데 (사실 처음엔 이녀석이 나보다도 한국 드라마나 연애인 이름등을 다분 알고있다는 사실에 쇼킹한 적이 있었다), 확실히 환자를 한국어로 보기에는 난감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친구였다

하루는 L군과 병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L이 이렇게 묻는다.

L군: 야, digital rectal exam (DRE)을 한국말로 뭐라고 하냐?
kainan: 그건 갑자기 왜 궁금해 진거냐?
L군: 음, 우리 R2가 한국사람 환자가 들어왔다고 나보고 있다가 보라는데 DRE해야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바지벗고 업드리세요 할수 없쟎아.
kainan: (허걱)

하지만 순간 DRE가 한국어로 어떻게 되는지 보다는.... 웬지 음흉한 슬픈듯한 녀석의 얼굴과 나이트릴 장갑의 고무줄 놓는 소리가 (타악~~~~~~~~)들린건 둘째 치고... 나역시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데 마침 K가 트레이를 들고 지나간다. 한국에서 의대를 나온 K는 조금 나이차가 난데다가 말이없고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은 형이었다 (뭐 자주 볼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하지만 서로 얼굴도 이름도 알고 같은 한국 사람이란 메리트에 친하지는 안아도 대충 알고 있던 사이었는데 그도 점심을 먹으러 내려온 모양이다. 손을 들어 그를 불렀다.

kainan: 형, 같이 밥먹어요

옆에 앉은 형과 L군과 조금 잡담을 늘어 놓다 눈치를 봐서 물어 봤는데...

kainan: K형, DRE가 한국어로 뭐죠.
K: 그건 왜?
L군: 조금있다 한국 환자가 있어서요.
K: (감자 튀김을 먹으며) 음, 지직스.
kainan: 지직스요? (뭐야 이런건 들어본적도 없쟎아!)
K: 음.
kainan: 형, 지직스(zzyzx)는 나이트 클럽이름 이잖아요.

당시 병원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한인 타운에 지직스란 클럽이 있었다.

K: 아니야, 한국에선 지직스 (指直스)라고 해. 손가락을 한자로 지, 그리고 rectum을 직장이라고 해서 지직스.
kainan: (아니 지금 이 인간이...)

L군은 아직 사태 파악을 못한듯한 얼굴로 묻는다.

L군: 그럼 '스'는 뭐에요?
kainan: (아니 이자식은 이게 사실이라 믿는 거냐?!)
K: 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사뭇 진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내내 고민했던것 같다. 동갑이나 아주 친한 형같으면 장난하냐고 딴지도 걸어보겠지만 K를 잘 몰랐던데다가 이때만큼은 L군이 진지해 보여 가만히 있었다. 그저 구라냄새가 펄펄 나는 사기성 농담을 입술에 침도 안바르고 해놓고는 점심을 먹는 K였지만 점심시간이 끝날즈음 그가 농담이였어 라며 진실을 밝혀 주기를조용히 바랬던것 같다.

그러나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L은 DRE가 지직스라 굳게 믿고 돌아 갔고 K는 조금도 꺼리낌없이 식당을 나섰다. 설마 L이... 라며 앨리베이터 앞에 선 나는 K를 함부로 믿으면 안되겠군이라며 이일을 잊게 되었다.

이일이 떠오른 이유는 아방가르드님의 얼음집을 보다가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에 zzyzx라는 길이 있다는 리플을 남기려다 였다. 알파벳의 끝3자로 만든 재미있는 단어라는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L군이 진짜 지직스라는 말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정말 그가 K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역시 세상은 넓고 믿을놈은 없다...가 아니라. 누가좀 dre가 뭔지 알려주었음 좋겠다는 생각이다 (K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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